목록60일간의 글쓰기 (11)
열린글방
[부록] 못다한 편지 To. 사랑하는 나의 후배 H에게.. 잘 지내고 있니? 잘 지내냐는 물음에 대답하기 어려울거란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건강히 잘 지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의 첫줄을 쓴다. 모진 비바람과 천둥속에도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는 너를 보고있으면 한없이 안쓰럽다가도 대견하기도하고 아름답기도해 온 세상의 부당함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물들지 않는 초연함이, 결코 요란하지 않은 강인한 침묵의 힘이 네 안에는 분명히 있다는걸 아기를 토닥여 재우듯 가만가만히 이야기해주고싶었어 나는 비록 그곳을 돌아나왔지만, 너 만큼은 꼭 예쁜 꽃을 피워냈으면 하는것은 나의 욕심일까? 네게 조금 더 튼튼한 우산이 되어주고싶었는데 행여 나의 녹슨곳에서 떨어진 녹물이 널 상하게할까 두려웠..
열린글방을 찾아주시는 독자 한분 한분이 제게는 매우 소중하기때문에 휴재기간동안 찾아주시는분이 혹시라도 계실까봐.. 궁금해하실만한 질문들에 대해 짤막한 Q&A를 만들어보았습니다. Q1. 60일 글쓰기를 시작한 계기? 퇴직후 어렸을때부터 좋아하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보고싶다는 마음을 가지고있던 차에 박요철 작가님께서 운영하시는 스몰스텝 '황홀한 글감옥' 프로젝트 (https://brunch.co.kr/@aiross/679)를 알게되어 도전하게되었습니다. Q2. 왜 제목을 출직장기로 정했나요? 성경의 '출애굽기' 제목에서 모티브를 얻어 편안한 직장에 안주하지않고 진짜 나를 찾아 떠나는 삶의 과정을 글로 남겨보고싶다는 마음에 '출직장기'로 제목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Q3. 글의 장르가 뭔지 궁금합니다. 일단은 ..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 당일은 잠시 쉬어가고자합니다 :) 찾아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가족과 함께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가장 소중한것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세월가는줄 모르고 마음 치우기에 여념없던 중, 외할아버지께서 새로운 생신을 맞으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더이상 '바빠서 이번엔 못갈 것같아요' 라는 멘트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아이같이 기뻐하며 네모난 시멘트집을 걸어나온 나는 아주 오랜만에 마음편히 한적한 시골마을로 여행을 떠났다. 산넘고 물건너 충청남도 당진시 대조리의 초록지붕집을 찾아가는 길에는 시야가 닿는 모든곳에 싱그러운 풀내음이 가득했고 푸른하늘에는 이름모를 다양한 산새들이 저마다의 규칙대로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굽이굽이 천리길 지나 도착한 그곳은 아무런 속박도 제약도 없이 만물이 어우러져 저마다의 빛깔을 뽐내고있는 자연속에 위치한 아담한 시골집으로, 아흔이 넘으신나이에도 한결같이 농사일에 열심이신 외할아버지와 듬직한 외삼촌, ..
누군가에게 '삶의 기쁨'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그 이전에 나 스스로부터 온전히 '삶의 기쁨'을 느낄줄 알아야했다. 그리고 애시당초 '삶의 기쁨' 그 자체가 되어 살면 나누거나 곱할 필요없이 모든것은 원하는대로 자연스레 흘러갈 일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를 더 가치로워지게 하기위해 눈에 보이는 물건들로 치장하고 귀에 들리는 다양한 말들을 담아오거나 떠오르는 온갖 생각과 걱정을 끌어들여 살지만 사실 어떠한것도 더하거나 뺄 필요 없이 세상의 만물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고 가치롭다. 나는 온전한 '삶의 기쁨' 그 자체의 상태로 살기위해 몸과 마음을 비우는 대청소부터 시작하기로하고 매 순간 스스로를 온전히 인지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돌보기 위해 씻고 먹고 자..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삶이 중요하듯 원인과 결과 사이의 과정 또한 중요하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났으며 인생의 과정을 겪는 중이고 매순간 삶 속에서의 다양한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를 매 순간 맞이하며 죽음으로 가고있다.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났으나 '태어났다'는건 신체적인 묘사이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양한 경험을 하며 같으면서도 달라지듯 우리는 모두 매순간 새로이 태어나고 또 죽고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나고 죽음이 다르지 않은 상태 그게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나'이다. 오랫동안 이 진짜 '나'에 대해 상실하고 살아온 상태였기에 지금 이 순간의 '내'가 무엇을 원하고있는가에 대해 온전히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살기위해' 먹고 '자야만 해서' 자..
퇴직 3일째, 은둔하고 있는 내게 안부를 묻는 몇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지인들은 대체로 "직장을 그만뒀어" 라는 말이 "나 오늘 햄버거를 먹었어"와 같은 별달리 놀라울것 없는 내용이라는듯 태연한 반응을 보여서 도리어 내가 당황할 정도였지만, 간혹 걱정되는 마음에 "그렇게 오래 공부하고 노력했는데 아깝지 않아?"라고 물어오시는 분들도 종종 계셨다. "언제까지고 영원한것이라는건 없으니까.. 10년 빨리 은퇴한셈치려구요." 멋쩍게 눙치고 수화기를 내려놓고나니 지나온 인생의 여러 순간들과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여 스친다. 추억의 필름을 하나씩 꺼내들어 찬찬히 되돌아보니 세상의 모든것이 전부 궁금하고 신기하기만 했던 어린시절의 나는 길고 긴 인생길을 마치 단거리 경주하듯 내달리며 살기에 급급했던것..
진짜 나는 누굴까? 내가 하고 싶은게 뭘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걸까? 모든것은 여전히 물음표 였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보기로 했다. 아침부터 일어나 스마트폰으로 동네 문구점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나를 찾고 눅눅해져버린 마음을 말리는데 처음 떠오른것이 왜 문구점이었는가'는 지금도 여전히 미스테리지만 왠지 그곳에 가면 살아오며 여기저기 부딪히느라 금가고 깨어져 흩어진 잃어버린 영혼의 한 조각을 되찾아 올 수 있을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멀쩡하던 직장까지 뛰쳐나왔으니 현실적으로 무리가 가지않는 선에서 내가 하고싶은것은 말리지 않고 다 해 볼 작정이었다. 나의 충직한 스마트폰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가장 힘들이지않고 손쉽게 문구류를..
'아..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나' 학창시절 기숙사 생활을 했을때 공용 통돌이 세탁기를 쓴 적이 있다. 차례를 기다려 여러명이 한 세탁기를 사용해야했기때문에 허리 숙여 빨랫감을 정신없이 꺼내다보면 가끔 양말과 같은 작은 빨랫감들이 세탁기와 벽 사이의 좁은 틈으로 쏙 하고 넘어가곤 했었다. 금방 발견해서 꺼내오면 다행이지만, 벽틈 사이로 떨어졌다는것도 모르고 잊혀져 방치된 양말은 빛도 들어오지 않는 구석 틈바구니에서 먼지에 곰팡이까지 얹어져 작대기로 박박 긁어 꺼내었을땐 이미 엉망이 되어 못쓰게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나'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떠오르던 순간 내 마음은 딱 그 몇개월 묵은 눅눅하고 오래된 양말을 마주했을 때 드는 느낌과 꼭 같았다. 차라리 양말이었다면 락스에 ..
'그래. 쉬어보자. 쉬기 싫을때까지 쉬어보자. 새로운 것이 아닌 어쩌면 알고도 평생을 외면하고 살았을 진짜 나의 모습을 되찾아보자.’ 사람이 잠을 너무 깊게 자면 밤인지 낮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조차 분간이 안되는 무의식의 경계에 다다를때가 있다. 반복되어지는 야근과 불안, 셀 수 없는 걱정에 잠 못이루던 날들을 하룻저녁에 보상받기라도 하겠다는듯이 시체처럼 몰아치듯 잠을 해치운 나는 깨질듯한 허리통증에 겨우 잠에서 깨어났고 이내 평소와 뭔가 다르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적응이 안될 정도로 고요하고 적막한 방. 귀를 찢을듯한 시끄러운 알람소리도, 끈덕지게 나를 찾던 업무 전화도 더이상 울리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비로소 온전히 혼자가 되었음을 인지하니 어딘가 헛헛한것 같으면서도 가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