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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직장기 (出職場記) - 3화

자유작가 2019. 12. 18. 01:54

'아..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나'


학창시절 기숙사 생활을 했을때 공용 통돌이 세탁기를 쓴 적이 있다.

 

차례를 기다려 여러명이 한 세탁기를 사용해야했기때문에 허리 숙여 빨랫감을 정신없이 꺼내다보면 가끔 양말과 같은 작은 빨랫감들이 세탁기와 벽 사이의 좁은 틈으로 쏙 하고 넘어가곤 했었다.

 

금방 발견해서 꺼내오면 다행이지만, 벽틈 사이로 떨어졌다는것도 모르고 잊혀져 방치된 양말은 빛도 들어오지 않는 구석 틈바구니에서 먼지에 곰팡이까지 얹어져 작대기로 박박 긁어 꺼내었을땐 이미 엉망이 되어 못쓰게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나'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떠오르던 순간 내 마음은 딱 그 몇개월 묵은 눅눅하고 오래된 양말을 마주했을 때 드는 느낌과 꼭 같았다.

 

차라리 양말이었다면 락스에 담가 다시 세탁 하거나 햇빛에 말려쓰면 되고 정히 안되겠으면 버리고 새로 사면 그만일텐데,

 

이번에는 불행히도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고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마음'이어서 영 못써먹겠다고 불평하거나 어디다 내다버릴수도 없어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다.

 

허무와 회한과 씁쓸함과 이루 말할수 없는 고통스러운 생각들이 한번에 우르르 일어나 딱 죽고싶은 심정이었지만,

 

"죽어서 모든게 다 끝나고 해결될것만 같으면야 저 인간 속썩이는꼴 보기 싫어서라두 진즉에 골백번도 더 고쳐 죽었지" 라며 못난이 감자와 아빠를 돌려깎던 엄마의 시크한 얼굴이 불쑥 떠올랐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봐도 죽음은 내가 처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이미 스스로 이런 마음 상태라는것을 모르고 주변에 벌인 민폐만 해도 한가득일텐데 죽어서까지 민폐와 걱정거리로 남고 싶진 않았다.

 

일단 내가 이런 상태라는걸 알아차린것만 해도 깜깜하던 방에 불을 킨것과 같고, 포기하지않고 달라져보기로 마음먹은 순간 빛과 바람이 드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것과 같을테니까

 

난장판이던 방을 손에 잡히는대로 정리하고 깨끗하게 치웠던것과 같이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하나하나 정리하고 빛과 바람을 쪼여주다보면 무언가 조금씩 변화가 있지않을까?

 

퇴직 이튿날. 자괴감에 몸부림치던 나는 일상에서 찾은 익숙하고 오래된, 하지만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방법들로 눅눅해진 마음 한번 제대로 말려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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