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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간의 글쓰기

출직장기 (出職場記) - 4화

자유작가 2019. 12. 19. 02:14

진짜 나는 누굴까? 내가 하고 싶은게 뭘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걸까?

모든것은 여전히 물음표 였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보기로 했다.


아침부터 일어나 스마트폰으로 동네 문구점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나를 찾고 눅눅해져버린 마음을 말리는데 처음 떠오른것이 왜 문구점이었는가'는 지금도 여전히 미스테리지만

 

왠지 그곳에 가면 살아오며 여기저기 부딪히느라 금가고 깨어져 흩어진 잃어버린 영혼의 한 조각을 되찾아 올 수 있을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멀쩡하던 직장까지 뛰쳐나왔으니 현실적으로 무리가 가지않는 선에서 내가 하고싶은것은 말리지 않고 다 해 볼 작정이었다.

 

나의 충직한 스마트폰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가장 힘들이지않고 손쉽게 문구류를 구매할 수 있는 최단거리의 목적지를 나열해줬지만,

 

내가 찾고자하는 것은 고래등같은 대형마트와 모든것이 다있다는 창고형 도매점이 아닌 '있을것은 다 있지만 없을 것은 없는' 어린시절의 학교 앞 구멍가게와 같은 '진짜 문구점'이었다.

 

집 주변에 학교가 여럿 있었음에도 내가 생각하는 '진짜'의 조건에 부합하는 곳을 찾는데에는 의외로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빈틈없는 출근길의 지옥철과 무한경쟁의 속도싸움과 같은 택시, 삶의 고단함을 실어나르는 버스가 아닌, 튼튼한 나의 두 다리로 땅을 밀어 밟고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걷는 경험은 모든것에 지쳐서 절인 파김치와 같던 나에게 신선하고 소소한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대와 설레임이 걸음 걸음 묻어나 기쁨으로 꽃피어날때쯤, 간판도 없이 비닐 칸막이로 입구를 겹겹이 둘러친 작은 동네 문구점이 두 눈에 들어왔다.

 

열댓평 남짓한 공간에 반은 식료품을 파는 슈퍼, 나머지 절반은 색바랜 문구류를 빼곡히 쌓아놓은 허름하고 작은 문구점.

 

'예전보다 더 단출해보이는것은 내가 이미 다 자란탓일까?'

 

어딘가 쓸쓸하고 헛헛해진 마음을 안고서 좁은 입구를 통과했었던것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꼬깃꼬깃 접힌 세뱃돈과 모자쓴 할아버지가 그려진 백원짜리 동전을 한아름 모아들고 문방구 입구를 줄기차게 드나들던 그때 그 시절의 작은 꼬마아이로 되돌아가있었다.

 

 

 

커터칼로 깎지 않아도 자동으로 깎이는 연필깎이, 갱지에 꾹꾹 눌러쓰지않아도 부드럽고 진하게 써지는 연필 한 다스, 예쁘고 알록달록한 캐릭터 상품으로 가득 차 있는 소소한 기쁨이 넘치는 공간에서 마음가는대로 양껏 쇼핑을 마친 나는 2만 5천원의 꽝 없는 행복권에 당첨되어 양손 가득 예상치못한 행복을 나눠 들고 의기양양한 걸음걸이로 가게를 걸어나왔다.

 

속이 훤히 비치는 흰봉지에 나누어 담긴것은 세련되고 아름답게 가공된 명품 브랜드의 시계도, 수천억을 호가하는 그림이나 건물도 아닌 아무짝에 쓸모없어보이는 종이노트와 연필 그리고 단순한 연필깎이일 뿐이었지만 그 단순하고 투박한 물건들이 나에게 전해준 교훈은 결코 값싼것들이 아니었다.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버텨내느라 제대로 숨고를 틈 없이 살아가던 우리에게 그저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던 이야기를 직접 몸소 체험하고나니 가슴 속 안으로부터 작지만 따뜻하고 밝은 빛이 서서히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들었다.

 

곧이어 드는 왠지모를 출출함에 근처 짜장면집에 들러 쫄깃하고 맛있는 짜장면 한그릇과 뜨끈한 짬뽕국물을 시켜 순식간에 비워낸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오늘의 일을 속으로 다시금 되뇌었다.

 

'그래. 행복은 참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이제껏 다 잊고 살았구나..'

 

불켜진 방안에 도착해 짐을 가지런히 내려놓고 옷장에 외투를 걸어놓다가 옆에 걸린 거울 앞에 문득 시선이 멈췄다.

 

추운 날씨에 상기되어진 두 볼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나이만 들어 겉늙었지 속은 여전히 문방구 앞을 서성이던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별다를것 없는 '여전히 같은 나'였고 늘상 먹고 자고 꾸미고 항상 함께해온 '나' 였음에도 유독 오늘따라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이 마치 처음만난 사람을 보는듯 낯설고 새롭게 느껴졌다.

 

'천천히 인사를 건네고, 좋아하는것과 싫어하는것은 무엇인지 묻고, 하고싶은것을 알아가 보자. 더도말고 덜도말고 오늘처럼'

 

책상앞에 앉아 하루를 정리할 목적으로 구매한 빈 노트의 첫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혔다.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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