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글방

출직장기 (出職場記) - 5화 본문

60일간의 글쓰기

출직장기 (出職場記) - 5화

자유작가 2019. 12. 20. 00:35

퇴직 3일째, 은둔하고 있는 내게 안부를 묻는 몇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지인들은 대체로 "직장을 그만뒀어" 라는 말이 "나 오늘 햄버거를 먹었어"와 같은 별달리 놀라울것 없는 내용이라는듯 태연한 반응을 보여서 도리어 내가 당황할 정도였지만,

 

간혹 걱정되는 마음에 "그렇게 오래 공부하고 노력했는데 아깝지 않아?"라고 물어오시는 분들도 종종 계셨다.

 

"언제까지고 영원한것이라는건 없으니까.. 10년 빨리 은퇴한셈치려구요." 

 

멋쩍게 눙치고 수화기를 내려놓고나니 지나온 인생의 여러 순간들과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여 스친다.

 

추억의 필름을 하나씩 꺼내들어 찬찬히 되돌아보니 세상의 모든것이 전부 궁금하고 신기하기만 했던 어린시절의 나는 길고 긴 인생길을 마치 단거리 경주하듯 내달리며 살기에 급급했던것 같다.

나 다운 삶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그저 앞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모두가 원하는 그 곳'에 도달하면 자연히 나의 행복도 뒤따라올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먹는것도 자는것도 잊고 앞서서 달리는데 열중한 탓에 누구보다 빠르고 먼 곳에 도달한것처럼 보였지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힘겹게 도착한 그곳은 '모두가 원하는 곳'이었을지언정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곳'이 아니었기에 나는 항상 가슴속 어딘가에 메울 수 없는 구멍이 나 있는것처럼 끝없이 허무했고 이상과 현실의 간극사이에서 늘 불행해했다.

 

'좀 더 일찍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삶의 방향을 조정했더라면 이런 아쉬움이 조금은 덜할 수 있지 않았을까?'

 

티벳의 승려들은 수천개의 색모래 한 알 한 알로 며칠간을 공들여 휘황 찬란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놓고는 완성된지 한시간도 되지않아 붓질로 모든것을 쓸어 없애는 수련을 한다고 한다.

 

 

 

쏟아 없앤 모래더미의 반은 건강과 행복을 빌며 주변에 나누어주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가 사는 터전인 지구에게 선물하는 의미로 강가에 뿌려주는데 이러한 수련을 하는 이유는 '인생의 무상함'에 대해 깨닫기 위함이다.

 

여러날 공들인 아름다운 만다라가 붓질 한번에 사라지듯, 열중해오던 모든것들은 꿈에서 깨어나듯 일시에 끝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인데 그 때가 되면 모든것은 허무해지고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내달려온걸까?' 라는 빈 물음만이 남게되는것 같다.

 

그 물음을 곰곰히 곱씹어보니 분명히 맨 처음 나에게 '간절히 원하는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열중해서 살아왔을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지낸 탓인지 그게 대체 무엇인지 단번에 떠오르질않았다.

 

단 한가지 분명한것은 앞으로 어떤일을하고 어디에서 살아가던지 다시금 그 허무한 상태에 빠지지 않으려면 '내가 진짜 원하는그것'부터 찾아내야한다는 것이었고,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공부가 하고싶어서' 라던가 '다른사람들을 돕고싶어서'와 같은 표면적인 이유들이 아닌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고 '왜' 그런것을 원하게 되었는지와 같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요히 앉아 '내가 진짜 원하는것'이 무엇이었는지에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