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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간의 글쓰기

출직장기 (出職場記) - 2화

자유작가 2019. 12. 17. 01:30

'그래. 쉬어보자. 쉬기 싫을때까지 쉬어보자. 새로운 것이 아닌 어쩌면 알고도 평생을 외면하고 살았을 진짜 나의 모습을 되찾아보자.’


사람이 잠을 너무 깊게 자면 밤인지 낮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조차 분간이 안되는 무의식의 경계에 다다를때가 있다.

 

반복되어지는 야근과 불안, 셀 수 없는 걱정에 잠 못이루던 날들을 하룻저녁에 보상받기라도 하겠다는듯이

 

시체처럼 몰아치듯 잠을 해치운 나는 깨질듯한 허리통증에 겨우 잠에서 깨어났고 이내 평소와 뭔가 다르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적응이 안될 정도로 고요하고 적막한 방.

 

귀를 찢을듯한 시끄러운 알람소리도, 끈덕지게 나를 찾던 업무 전화도 더이상 울리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비로소 온전히 혼자가 되었음을 인지하니 어딘가 헛헛한것 같으면서도 가볍고 개운한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코 끝을 스쳤다.

 

물먹은 솜과 같은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창문을 여니 차갑고 투명한 신선한 공기가 들숨을 타고 한가득 들어왔다.

 

순간, 이맘때쯤 한창 일하고 있을 사무실의 풍경이 떠오르면서 일과 시간을 압축적으로 짜 넣었을 때 퍼지던 그 찐득한 짠내가  떠올라 미간이 찌푸려졌다.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 되돌아가지 않을 수 있음에, 나를 돌아볼 시간이 허락된 것에 감사하자.'

 

 

가만가만 스스로를 다독이고 돌아서니 그제서야 엉망 진창이 되어있는 방 안이 눈에 들어온다.

 

하루하루 출근하고 퇴근하는것조차 버거웠던 나의 방은 며칠째 묵은 세탁물, 뒤섞인 외투, 언제 마셨는지 모를 빈 드링크 병들과 영양제 껍질들, 수십권의 책더미와 서류 사이사이 끼워져있는 명세서 그리고 정체불명의 영수증들로 뒤섞여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도대체 난 얼마동안이나 나 스스로를 방치하며 살아온걸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정도로 어질러진 방바닥을 한동안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몸과 마음에 쌓인 시름과 걱정을 분리수거하듯 말없이 청소를 시작했다.

 

여름옷 겨울옷이 한데 뒤섞인 옷장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쓰러진 책들을 일으켜세우고 더이상 쓰지않는 물건들을 찾아 쓰레기통을 비워내는 것

 

특별할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신기하게도 한 호흡 한 호흡마다 온 몸에 피가 돌며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목숨처럼 아끼고 중요하게 여겨 집착해오던 수많은 일들에서는 되려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삶의 기쁨이 '언제고 해치워버리면 그만' 이라며 미뤄두던 아주 작고 쉬운 정리에서 느껴질 수 있다는것이 몹시 낯설었다.

 

'살아오면서 청소와 정리를 하는것이 오늘 하루 뿐인것도 아닌데 대체 뭐가 다른걸까?'

 

시간과 여유를 지급해 네모난 지폐와 동그란 동전을 받아오는 노동의 고리에서 아주 잠깐 비켜났을 뿐인데 삶의 질이 이렇게나 차이가 나다니..

 

그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것을 이룰 수 있는 시간과 여유는 무한정 정해져있지 않기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며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걸

 

그동안 언제 올지 모를 정해지지않은 불확실한 미래에 행복하고자 현재의 나를 너무 많이 희생했고

 

스스로의 손으로 희생되어진 현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거로 넘어가면서 제대로 해독되지못한 열망이 마음 한 구석에 켜켜이 쌓여 검게 썩다보니 '우울'과 '무기력'이라는 이름의 곰팡이로 퍼져 나 자신을 여기저기 좀 먹고 있었다는것을

 

너무나도 뒤늦게, 하지만 너무나도 적절한 타이밍에 알아차려버렸다.

 

'아..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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