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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글방
퇴직 3일째, 은둔하고 있는 내게 안부를 묻는 몇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지인들은 대체로 "직장을 그만뒀어" 라는 말이 "나 오늘 햄버거를 먹었어"와 같은 별달리 놀라울것 없는 내용이라는듯 태연한 반응을 보여서 도리어 내가 당황할 정도였지만, 간혹 걱정되는 마음에 "그렇게 오래 공부하고 노력했는데 아깝지 않아?"라고 물어오시는 분들도 종종 계셨다. "언제까지고 영원한것이라는건 없으니까.. 10년 빨리 은퇴한셈치려구요." 멋쩍게 눙치고 수화기를 내려놓고나니 지나온 인생의 여러 순간들과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여 스친다. 추억의 필름을 하나씩 꺼내들어 찬찬히 되돌아보니 세상의 모든것이 전부 궁금하고 신기하기만 했던 어린시절의 나는 길고 긴 인생길을 마치 단거리 경주하듯 내달리며 살기에 급급했던것..
진짜 나는 누굴까? 내가 하고 싶은게 뭘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걸까? 모든것은 여전히 물음표 였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보기로 했다. 아침부터 일어나 스마트폰으로 동네 문구점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나를 찾고 눅눅해져버린 마음을 말리는데 처음 떠오른것이 왜 문구점이었는가'는 지금도 여전히 미스테리지만 왠지 그곳에 가면 살아오며 여기저기 부딪히느라 금가고 깨어져 흩어진 잃어버린 영혼의 한 조각을 되찾아 올 수 있을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멀쩡하던 직장까지 뛰쳐나왔으니 현실적으로 무리가 가지않는 선에서 내가 하고싶은것은 말리지 않고 다 해 볼 작정이었다. 나의 충직한 스마트폰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가장 힘들이지않고 손쉽게 문구류를..
'아..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나' 학창시절 기숙사 생활을 했을때 공용 통돌이 세탁기를 쓴 적이 있다. 차례를 기다려 여러명이 한 세탁기를 사용해야했기때문에 허리 숙여 빨랫감을 정신없이 꺼내다보면 가끔 양말과 같은 작은 빨랫감들이 세탁기와 벽 사이의 좁은 틈으로 쏙 하고 넘어가곤 했었다. 금방 발견해서 꺼내오면 다행이지만, 벽틈 사이로 떨어졌다는것도 모르고 잊혀져 방치된 양말은 빛도 들어오지 않는 구석 틈바구니에서 먼지에 곰팡이까지 얹어져 작대기로 박박 긁어 꺼내었을땐 이미 엉망이 되어 못쓰게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나'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떠오르던 순간 내 마음은 딱 그 몇개월 묵은 눅눅하고 오래된 양말을 마주했을 때 드는 느낌과 꼭 같았다. 차라리 양말이었다면 락스에 ..